쓸 만한 당신, 박정민
사내 도서관에서 문득 집어든 배우 박정민의 산문집.
영화 <동주>에서 인상이 남아 가볍게 읽으려고 집어왔다.
보기와는 다르게..(죄송) 명문대를 다니다 자퇴하고 한예종에 들어가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고 한다.
글만 읽어도 딱 중학교 때 우르르 몰려다니며 낄낄 거리는 평범한 남학생이 떠오른다.
문장 끝마다 글을 써내려가는 자신이 오글거린다는 듯 시시콜콜한 농담을 덧붙이는데 거슬리지 않는다.
본인의 찌질하고 마이너한 감성을 드러내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진지한 얘기는 나름의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매력적인 배우 같다.
요즘 <사바하>라는 영화가 개봉했다니 한 번 보러 갈까 싶다.
아니, 좀 무서운 영화인 거 같으니 나중에 다운을 받아봐야겠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볼매 배우 한 명을 알게 된 것 같다.
- 여행의 순간들, 그러니까 공항이라는 경계의 공간에 서는 것부터 타국에서 만나는 이들, 그곳의 공기와 역사 같은 것들에 짓눌려 나 자신이 작아지는 그 모든 순간순간들은 전부 값지다. 그리고 그 순간 들었던 음악들까지도 지금 내겐 소중한 기억이다.
- 여행은 그런 것, 오히려 역향수를 불러일으켜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버리게 하는 그런.. 당신의 평생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여행을 단 한 번이라도 하시길 진심으로 빌겠다.
- 누구나 할 수 있는 진부한 말일지 몰라도, 중요한 건 상이 아니고 상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것일 테다. 만 원 남짓한, 그 피땀 흘려 번 돈을 내고 영화관에 들어오는 관객들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배우가 되는 것일 테다. 진실된 눈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것. 마치 양조위처럼..
- 뭔가 복잡하고 어지럽고 두려울 땐 떠나버리는데 어김없이 이 곳에 와 있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버려도 버려지지 않을 지경에 이를 때쯤 돌아가서 다시 제자리에서 생활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 이번엔 홍콩의 밤거리에 찌꺼기들을 버리고 돌아갈 생각이다. 10개월 동안 먹먹했던 감정의 편린들과는 이제 좀 헤어지고 싶다. 비우고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비워서 다시 또 다른 인생을 만나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 그 인생으로 숨쉬기 위해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돌아가겠다.
- 성장해버렸다. 나는 성장쟁이. 이놈의 성장판은 언제 닫히려는지.
- '고맙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뭘 하시든 고맙습니다.'
수첩에 적힌 이상한 글자들이 지금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스물다섯 살의 내가 스물여덟 살의 나를 위로한다. 동생 주세에 꽤나 위로를 잘한다. - 그렇게 조급함과 다스림을 반복하는 20대 후반의 본인은 다시금 박원상의 말씀을 되새긴다.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 때를 기다리며 성실하게 충실하게 절실하게 하자. 뭐 이러다 또 조급해지기 마련일 테지만 꾸준히 해보려고 노력한다.
- 끼워 맞추지 말라고? 원래 인생이라는 게 내 위주로 편집되는 것 아니겠는가.
- "영화는 네 것 내 것이 없다. 이건 내 거네, 저건 네 거네 하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영화는 온데간데없다. 하지만 가운데 두고 모두가 같이 보고 있으면 영화는 늘 그 자리에 있다."
- 언제나 좋은 팀에 속해 있을 수는 없어도 언젠가 좋은 팀에 속해 있을 수는 있을 거다. 모두가 강팀에 속해 있을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의 팀을 강팀으로 만들 수는 있을 거다. 뒤에서 받쳐 주는 동료들을 믿고 다들 지금 하고자 하는 일들 모두 다 이뤘으면 좋겠다. 늘 그렇듯,
결국엔 다 잘될 테니까 말이다. - '어떻게 개를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있지만, 어떻게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는 개는 없습니다.'
- 그런 또래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장가를 가고 자신과 닮은 아이를 낳고 각종 SNS에 애 사진만 올린다. 이 애가 훗날에 자기 사진을 무단 도용한 부모의 애스타그램을 발견하곤, 복수의 아빠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노인이 된 힘없는 아빠의 사진을 마구 올려댈 것이다. 그 정도로 여과 없이 참 많이도 올린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냐고. 그래 어쩔 것이냐.
- 사실 빨리 서른 살이 되어보고도 싶었다. 서른쯤이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열심히 산다고도 살았다. 소신도 있고 신념도 있고, 그것들을 크게 배신한 적도 없었다. 유혹이 있을 때마다 넘어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도 같다. 그런 고집들이 나 자신을 점점 땅 속으로 꺼지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들을 굽힐 의사는 없다. 그렇게 서른이 되었고, 소신과 신념만 남은 다 큰 어른아이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 "내가 어디 가서 네 팬이라고 하면 있잖아. 나까지 마이너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 남들이 다 읽는 책은 읽지 않았고, 남들이 다 보는 영화도 보지 않았다. 대신 아무도 안 보는 영화를 골라 봤고, 그런 영화는 주로 야했다.
- 학창 시절, 착하지 않은데 선행상을 받은 날 뭔가 느낌이 안 좋더니, 영어를 못하는데 영어 연극 대회에서 상을 받은 날 내 인생의 상복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 '남자신인연기상이라니.'
'난 신인도 아니고 연기도 뭐 그닥. 그냥 남자다워 보여서 준 건가.' - 모르는 것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가 됐다.
- 모르는 세상이 참 많다. ...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각자의 세상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평생 알 수 없을 수도 있을 테다. 그저 응원해줄 뿐이다. 잘 모르니까. 당신들이 어떤 실수를 하는지도 나는 잘 모를 것이다. 모르니까, 닥치고 응원하겠다.
- 열서너 살 남짓한 아이들은 그곳에 앉아 돈을 내지 않고 만화책을 뽑아 봤고, 자기 돈이 나가지 않는 알바생은 그 아이들에게 그 어떤 꾸중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형을 방정환이라고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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