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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Book_온전히 나답게 written by 한수희

책을 읽게 된 동기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읽은 지 오래된 책


온전히 나답게 by 한수희




리뷰를 쓸까도 생각했지만 독서노트 정도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책에서 다루는 여러 주제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 중간에 강상중 교수의 책 구절이 인용된 것도 신기했고.




  • 20대에는 그 하찮은 일, 다시 말해 '생활'이란 게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 너머의 것을 꿈꾸었다. 원대한 꿈, 이상, 포부 같은 것 말이다....(중략)
    '생활'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 건 20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였다. 건강하게 살지 않으면 건강한 사고도, 건강하지 않은 사고도 할 수 없었다. 토대를 탄탄하게 쌓아놓지 않으면 나의 비관에 나 자신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것이 아니라 여기와 저기 사이를 왕복하는 산책을 하게 되었고...(중략) 생활의 토대를 단단히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제야 마음속 깊이 안심이 되었다. 그제야 덜 휘청거리게 되었다.

  •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웨스트사이드에 아파트가 있었기에 여기 사는 것만으로도 난 내가 고결하고 총명하다고 믿었다. 월세를 내면서 살았기에 겸손해질 수 있었다. 아파트가 허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세련됐다고 믿었다. 쉽게 말해, 이 아파트는 심오한 자기애를 단적으로 표현한 나의 집이었다.

  • 내가 동경하는 가난은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지킬 것을 지키려는 가난이다. 품위를 잃지 않는 가난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소금을 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 가난하긴 하지만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것.

  • 아낄 줄 모르는 마음은 자꾸만 새것을 찾게 만든다. 무얼 얻어내도 기쁘지가 않다. 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엇이든 귀하게 여기는 마음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수를 쓴다.

  • 누군가는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생강 찌꺼기를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내어두는 사람은 가슴 속에 가난을 품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가난에도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가슴 속에 가난을 품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다정해지고 좀 더 담백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그녀가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드물게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조심스럽다. 그녀에게 건드릴 수 없는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 딱히 무슨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젊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뭘 해야 좋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죽어도 좋을 것 같았고, 사는 게 의미 없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럼에도 내 앞에는 아직도 살아야 할 시간들이 구만리였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누가 시킨 장거리 달리기를 별 의지도 의욕도 없이 달리고 있는 거나 같았다. 그런데 매일같이 빵을 만드는 것은 매일같이 감내해야 할 어떤 것을 묵묵히 해내는 느낌이 들어 좋다. 참을성이라고는 없이 내일 죽어도 좋을 것처럼 막 살던 여자애가 어느 순간 어른이 된 기분이라 좋다.

  •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끝장을 보려고 뜨겁게 도전하다 보면 각자가 가진 능력과 개성, 자기 안의 힘이 크게 꽃피는 날이 반드시 온다.

  • 내가 먹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자신감들이 모여 한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 나는 그저 오늘의 할 일만 산뜻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찜찜한 기분으로, 내일을 두려워하면서 잠들고 싶지 않다. 오늘의 할 일을 말끔하게 끝낸 후 승리의 맥주를 마시고 싶다. 남은 일이라고는 침대에 얌전히 들어가 이불을 덮고 발을 뻗은 채로 잠을 드는 것밖에 없다면, 그거야말로 오늘 나는 승리한 거 아닌가

  • 뿐만 아니라 나는 종종 그 물건이 아니라 물건을 사는 사람의 이미지를 사고 싶어서 산다. 그 물건을 사는 것으로 내가 전보다 더 낫거나, 멋지거나, 근사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까. 속물 근성이다.

  • 그러니까 절약을 해야 한다면 우선 한부터 풀어야 한다. 써본 사람이 절약도 할 수 있다. 그것도 궁색하지 않게.

  • 대문 위의 좁고 위태로운 공간이나 고무 대야, 빈 깡통에라도 꽃을 심는 할머니들은 가진 게 없어도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 눈에는 그런 것이 품위로 보인다.

  • 냉철한 현실감각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 환상의 색채를 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사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사람에게 그래서는 안 되지....'라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던 수많은 시시하고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이고, 또 이 정도로 지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나는 외모가 왜 중요하냐, 내면이 중요하지 라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인간에게 눈이 달린 이유는 어쩌면 눈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외모나 피부색이나 옷차림으로 그를 판단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간사한 본능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답게 옷을 입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초장부터 내 욕을 했더니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동시에 기운이 샘솟기도 한다. 바닥에서 시작하면 더 떨어질 데가 없으니까. 나는 이런 인간이다.

  • 결국 이 스웨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말라는 얘기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집에 있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다.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집을 아늑하게 꾸밀 줄 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가족을 위해서.

  •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 자신이나 내 생활을 조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행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비록 우리가 곧 모든 것을 잊게 된다 하더라도, 여행은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가장 높은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돈을 아껴 쓰게 되면 모든 걸 좀 더 음미하게 된다.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니까.

  • 숨은 그림을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라는 기분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래 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기분. 매우 수동적이고 또 대책 없는 기분.

  • '겸손하지 않은 도덕은 그것 자체로 폭력'

  • 동네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봄의 밤을 산책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어둠은 포근하고 뺨에 닿는 공기는 따뜻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식물들이 온 힘을 다해 자라거나 땅 밑의 곤충들이 분주하게 봄의 일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냉담했던 적막함은 사려깊은 고요함으로 바뀐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게 호의를 품은 것처럼 느껴진다.

  • 인생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면 인생의 구석구석 지뢰처럼 매복해 있는 어려움들을 건너가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진다. 선택을 하는 일도, 결정을 내리는 일도 조금은 더 쉬워진다.

  • 사실 내가 살아가면서 배운 것들은 다 회사에서 배운 것이다. 세상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배웠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 먹고 살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도 배웠다. 타협을 하고, 날짜를 맞추고, 비난과 지적을 가슴에 품지 않고, 칭찬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넘는 법도 배웠다. 회사에 다니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오만방자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 뭔가를 성취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것들을 발로 걷어차 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 잘하려고 하다 보니 부담스러웠고, 예전처럼 늘 이루고 싶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걸 못 이루는 상황들이 괴로웠다.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불타다 보니 더 하기가 싫어졌던 것이다. 그냥 하면 되는 거고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는데.

  • 나는 나이가 들수록 운명론자가 돼.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그리고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거든. 그럴 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받아들여야지. 결혼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모두 결점을 지닌 인간들이기에 조금이라도 겸손해지려고 애쓰면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어. 

  • <하우스와이프 2.0Homeward Bound>이라는 책을 쓴 에밀리 맷치는 모든 걸 엄마의 힘으로 해내려는 DIY라이프의 맹점을 지적한다. 바로 돈 있고 능력 있고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면서 시간과 돈의 제약에 묶인 노동자 계층, 서민층, 빈곤층이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 아무리 낯설고 아무리 외진 곳에 떨어져도 그곳에도 어떻게 하면 남을 공격할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보다는 그저 평범하게 살던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걸. 그리고 가끔은 정직하고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 느릿느릿 살고 싶다. 이러면 어떠하리, 저러면 어떠하리 하면서 유유자적 살고 싶다. 고민해 봤자 달라질 것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해가 나면 볕을 쬐고 비가 오면 처마 아래서 빗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다. 내년도 올해와 같을 거라고, 올해 굶어 죽지 않았으니 내년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살고 싶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에 내 뼈와 살을 자라게 한 놀이들은 다 너무 심심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들이 나라는 존재를 밑바닥에서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때 단단하게 땅을 다진 것인지도 모른다. 평생을 발붙이고 살아야 할 땅을 말이다. 그때 나는 재미라는 것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