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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Book_달과 6펜스 written by 서머싯몸

리디북스로 읽은 첫번째 책

'달과 6펜스'





멀쩡히 다니던 직장과 가족을 버리고 화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남자 찰스 스트릭랜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이후 그가 살았던 드라마틱한 나날들을 '나'라는 나레이터(직업은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스트릭랜드와 예술, 이를 대하는 대중들에 대해 시니컬하지만, 통찰력 있게 묘사한다.

실제 화가였던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하면서 소설적으로 각색이 된 부분도 있다고 한다.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이라 '달'에 대한 언급이 있을까 기대했는데 책 뒤에 해설이 없었다면 난 제목의 의미를 평생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을 것.


보통 내가 문학소설에서 메모하는 구절은 문장이 좋거나 표현이 유려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논리적이고 단단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 많았다. 예술, 여자, 인간심리, 사랑 등 그 토픽도 다양하고.

메모가 너무 많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표현이 좋은 문장+논리적인 문장+ 심히 공감되는 문장 을 전부 모으다보니 그리됐다.

마음이 너덜거릴 때마다 꺼내보면서 꼭꼭 씹어먹고 싶은 구절들이다.


( 혹시 이거 저작권 문제되면 조심히 알려주시길... )


  • 예술이란 정서의 구현물이며,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 정신 수양을 위하여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 지혜로운 이들은 점잖게 자기들의 길을 간다.그들의 그윽한 미소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여있다. 그들은 자기들 역시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소란스럽게, 그들처럼 경멸감을 가지고 안일에 빠져 있던 구세대를 짓밟아왔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지금 용감하게 횃불을 들고 앞장선 이들도 결국은 자기들의 자리를 물려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옛 도시 니네베가 그들의 위업을 하늘 높이 쌓아올렸을 때 새로운 복음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말하는 당사자에게는 자못 새롭게 여겨지는 용감한 말도 알고 보면 그 이전에 똑같은 어조로 백번도 더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


  • 내게는 그들의 열정이 어딘지 빈혈 증세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꿈도 약간 따분하게 여겨진다. 나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기야 나도 이제 한물간 사람일지 모른다. 


  • 하기야 수많은 부부들이 다 이런 식으로 산다. 이런 유형의 삶의 방식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런 삶은 잔잔한 시냇물이 푸른 초원의 아름다운 나무 그늘 밑으로 굽이굽이 흘러가 이윽고 드넓은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그 바다는 너무 평온하고, 너무 조용하고, 너무 초연하여 불현듯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불러 일으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 삶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것은 그 무렵에도 강했던 내 타고난 기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삶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잘 정돈된 행복이 있었다. 하지만 내 혈기는 좀더 거친 삶의 방식을 원했다. 그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쁨에는 무엇인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았다. 내 마음속에는 더 모험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변화를, 그리고 미지의 세계가 주는 흥분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험한 암초와 무서운 여울도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 그 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 하지만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그러니 인습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이 사내는 온몸에 기름을 바른 레슬링 선수처럼 도무지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 나는 양심이란 인간 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그것은 자아의 성채 한가운데 숨어 있는 스파이이다.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을 문 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적은 자신의 주인인 사회의 이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고 늘 감시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집단을 이탈하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냉큼 달려들어 분쇄해 버리고 만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를 높은 자리에 앉히고, 급기야는 왕이 매로 어깨를 때릴 때마다 아양을 떠는 신하처럼 자신의 민감한 양심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 주부의 본능이 처음의 황당했던 감정을 극복했는지 이제 응접실도 상당히 정돈되어 있었다.


  • 세상 사람들이란 남의 넋두리에 금방 싫증을 내고 남의 재난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한다는 걸, 영리한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 세상의 지혜는 그런 감정의 힘을 알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원하면 여자에게 그 남자와 결혼하라고 부추긴다. 사랑은 나중에 절로 생기게 마련이라고 장담하면서. 그것은 안전감에서 오는 만족, 재산에 대한 자랑스러움, 누군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즐거움, 가정을 가졌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 등이 어우러진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사랑은 몰입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 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 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의 사물, 말하자면 자기 자아에게는 낯선, 어떤 목적의 도구가 되고 만다.


  • 나로서는 도덕적인 문제로 분개하는 일이 어쩐지 쑥스럽게 여겨진다. 그런 일은 어쩐지 자기 만족을 위한 일 같아서 유머감각을 가진 이에게는 어색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성질이 여간 팔팔하지 않고서는 제 어리석음을 모르고 남의 잘못에 분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에게는 냉소적이면서도 진실한 데가 있어, 나는 그 앞에서는 무슨 일이든 허세처럼 보이는 일은 좀처럼 하기가 어려웠다.


  •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신령한 힘을 어쩌다 한번 체험하고선 그것을 늘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돌팔이 의사처럼, 사람들은 가진 것을 남용함으로써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견을 상대방이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미치는 나의 힘을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그처럼 사람의 자존심에 아픈 상처를 주는 것은 없을 테니까.


  • 사람이란 사교적인 교제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면을 너무 철저히 쓰고 다니다가 정말 그 가면과 같은 인격이 되어 버리는 일도 있다. 하지만 책이나 그림은 진짜 모습을 꼼짝없이 드러내고 만다. 겉만 그럴싸한 것은 곧 속이 텅 비어 있음을 나타낼 뿐이다. 


  • 욋가지를 쇳조각처럼 칠한다 해도 쇳조각처럼 보일 리는 없다. 아무리 특이하게 꾸민다 해도 평범한 정신을 감출 수는 없다.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작품에서도 날카로운 관찰자는 영혼의 깊은 비밀을 읽어내고 만다.


  •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