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추구하는 어떤 사무실을 찾은 길고양이. '보통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였다면 당장 프로필 사진에 걸어두었을텐데.
모르는 세상
박정민 배우의 에세이를 읽다가 '모르는 세상' 이라는 소제목에 꽂혔다.
소화기를 만드는 사람의 세상, 연기하는 사람의 세상.. 서로의 '모르는 세상'을 존중해줘야 한다 뭐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회사에 다닌 이후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가
'이거 알아?'
질문자는 '내가 전혀 아는 바가 없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아볼까하여 물어본다'는 의도겠지만, 나는 이 의도를 다분히 알고 있지만...
얄팍하게 몇 번 경험해본 일을 '네, 제가 그거 압니다.'라고 대답하는 일은 내겐 어째 좀 부끄럽다.
그래서 대답은 늘 '잘은 모르지만 이렇고 저렇다는 얘기는 들어봤습니다'라거나
'이 부분 정도는 압니다'라며 뜨듯미지근한 팩트 아닌 팩트를 내놓곤 한다.
수년간의 처세 실습을 통해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도 나는 알고 있다.
나에게 득이 되겠다 싶은 일은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총동원해 그 영역의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답을 하고
이 일을 맡았다간 고생길이 훤하다 싶으면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다시는 내게 못 물어보지 못하도록 애둘러 빠져나가야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 이 처세술은 막상 바로 대답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다시 본성에 의해 아주 겸손한(?) 리액션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다시금 회의감이 드는 지점이었다.
나는 쥐뿔 아는 게 없어도 많이 알고있는 듯이 연기하는 것.
조금 아는 사실로 아는 척 하면서 '모르는 나'를 숨겨야만 인정 받는 것.
그게 이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되기 위한,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촌스럽게 입밖에 내지는 않는) 처세의 정석이다.
당연한 일이고 응당 그래야하는 일을 너무 염세적으로 해석한 건가?
'모르는 세상'을 탐구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장래희망은 수십 번 바뀌었지만 그 가운데는 '모르는 세상을 배우고 이해하면서 내 안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일' 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평생 폐지를 주워 모은 돈을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는 할아버지를 가까이서 취재한다던가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이 위협 받는 섬에 찾아가 무서운 대자연의 일면을 경험하는 일.
무대 위 줄리엣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오열하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겪어보기 힘든) 청순 가련한 여자가 되어보는 일도 여전히 멋져보인다.
'모르는 세상' 속에 들어가 오감으로 그 세상을 겪어내는 '어떤 일' 을 하고 싶었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 무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무지할 뿐 아니라 둔감해지기까지한다..!)
그렇게 '모르는 세상'과는 멀어지고 작은 관심 주는 것조차 피곤해지는 '우물 안 전문가' 가 되어갈까봐 두려운 마음이 왕왕 든다.
오늘도 다가오는 월요일을 저주하며 주문을 외워본다.
우물 밖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그 세상 속 사람들 면면에 같이 기뻐하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 바라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 우물 밖으로,
폴짝 뛰어나갈 수 있기를.
#주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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