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이고도 쉽게 읽히는 연애소설이 땡겨 리디북스로 삼일만에 다 읽은 정이현 작가의 달콤한 나의 도시. 작가는 이후에도 여러 편의 연애소설을 냈는데 달나도가 가장 인기있고 평도 좋아뵀다.SBS에서 드라마로 방영 했었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는 이 소설에 공감할 만한 나잇대가 아니었기에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무려 황재헌교수님이 연출을 했었는데 말이지...
즐겨 읽는 장르가 아니라서(다른 장르를 즐겨읽는 것도 아니지만) 쉽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10점에 7점 정도 주고싶다. 말 잘하는 동네 언니가 말맛 좋은 표현을 써가면서 현실연애의 구질구질함과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담담하게 말해준다. 전개도 빠르고 3명의 30대여성들이 겪는 에피소드가 다채로운 점까지도 좋았는데 한국판 섹스앤더시티를 표방하려는 것인지, 흐름과 그다지 상통하지도 않는 듯한 거슬리는 비유들이 종종, 아주 종종 있어서 약 2점 정도를 깎았다.
(여기부터 스포 조금?)
로맨스 소설이라면 마땅히 행복에 겨운 또는 이후 주인공들의 행복이 보장되는 해피엔딩이나 차라리 눈물 쏙 빼는 새드엔딩이 있어야한다고 믿는 나는 달나도의 열린 결말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건 어디까지 개인 기호다.
꿀같은 잠시간 1시간을 포기하고 뻘건 눈으로 끝까지 읽어내려갔는데 결국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도, 영수의 컴백도 없이 끝나고나니 좀 김이 샜다. 영수와 태오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참 잘뽑은(?) 캐릭터라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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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제도권의 문 안에 들어선 자의 오만함이 슬쩍 묻어났다고 느낀 것은 내 자격지심 탓일까.
관리자들이 회의에 집착하는 이유는 공식적으로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자리일뿐더러, 잔소리를 통해 좌중을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알랑한 권력욕을 맛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한 마디에 따라 분위기는 이쪽으로, 아니면 저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나는 시민혁명의 불씨를 살려 활활 타오르게 한 여웅이 될 수도 있고, 진실을 교묘한 거짓으로 포장하여 임금의 눈을 멀게 하는 간신배가 될 수도 있다. 입사 이래 가장 극심한 압박감이 등허리를 내리눌렀다.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을 판단하는 기준이 점점 더 모호해져만 간다. 25세의 여자를 부러워하는 건 탱탱한 피부 때문이 아니다. 내 질투의 이유는, 그녀의 무모한 용기가 수틀리면 쉽게 손 털고 첨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의 비밀은 듣고 싶지 않다. 저쪽에서 하나를 주면 이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건네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 규칙이다.
재인과 유희는 미친 게 아니다. 재인은 재인대로, 유희는 유희대로 자기만의 길을 쉼없이 찾아가고 있는 거다. 오직 나만 조그만 웅덩이의 썩은 물처럼 이 자리에 멈춰 있다는 자괴감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아는 게 병일 수도 있어."
진심이다. 20대 후반을 지나오면서부터 종종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버렸어' 라는 탄식을 뱉어내게 되곤 한다. 세상의 숨겨진 이치들을 이미 다 꿰뚫어버린 것 같지만, 실상 곰곰이 따져보면 내가 몸으로 직접 겪어낸 것은 별로 없다. 아는 것과 겪는 것 사이에는 분명 엄청난 간격이 가로놓여 있다.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다는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좋다. 살기 위해 소비한다고 치자. 그런데 카드 영수증과 교환한 물건들을 받아들어도,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치미는 것은 왜일까?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지나 보다. 순간의 충만함, 꽉 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 그러나 사랑의 끝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소모하지 않는 삶을 위해 사랑을 택했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 사랑이 깨지고 나면 삶이 가장 결정적인 방식으로 탕진되었음을 말이다.
연인 사이의 대화는 세 가지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의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이야기하려들고, 종국에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시금털털하고 해묵은 어른인 척해봐야, 우리는 죄다 누군가의 '철 덜 든 자식새끼'인 것이다.
사람은 왜 선을 넘는가. 끊임없이 선을 의식하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소한 충동이 고장 난 신호등처럼 깜빡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대형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인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
타인의 눈에 스스로가 '정상적이고 반듯한 커플'에 속해 있다고 여겨질 때 여자는 미묘한 자긍심을 느낀다. 남자들도 그럴까?
너의 실존을 변화시켜서 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봐라
의도된 냉정과 과장된 친절들. 모든 것이 흘러 넘친다.
서울은 과잉의 도시.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누군가와 영원을 기약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 여정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할 때보다 어쩌면 헤어질 때, 한 인간의 밑바닥이 보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끔은 행복하게 사랑하는 연인들보다 평화롭게 이별하는 연인들이 더 부럽다.
고작 데이트 비용 몇 푼을 자존심으로 치환해, 내심 주판알을 굴려대던 내 궁색한 이유들을. 그 부박한 핑계들을. 이제 알겠다. 변명은 필요 없다. 나는 그 사랑에, 전부를 걸지 않았을 뿐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같이 서해안의 펜션을 찾아 헤맬 때와는 달리 불안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은 결국 목적지를 찾아내어 나를 데려다줄 것 같다.
나라는 개인은 제도 안에서 비껴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해왔다. 하지만 한편으론 고독이라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체온을 나눌 누군가를 찾아 주파수를 곤두세운다. 개인과 개인이 영원을 약속하는 순간, 제도가 탄생하는 그 모순을 뼛속깊이 겁내면서도.
언제부턴가 삶은, 아래로 쭉쭉 미끄러지기만 한다.
서울은 과잉의 도시.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누군가와 영원을 기약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 여정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할 때보다 어쩌면 헤어질 때, 한 인간의 밑바닥이 보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끔은 행복하게 사랑하는 연인들보다 평화롭게 이별하는 연인들이 더 부럽다.
고작 데이트 비용 몇 푼을 자존심으로 치환해, 내심 주판알을 굴려대던 내 궁색한 이유들을. 그 부박한 핑계들을. 이제 알겠다. 변명은 필요 없다. 나는 그 사랑에, 전부를 걸지 않았을 뿐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같이 서해안의 펜션을 찾아 헤맬 때와는 달리 불안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은 결국 목적지를 찾아내어 나를 데려다줄 것 같다.
나라는 개인은 제도 안에서 비껴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해왔다. 하지만 한편으론 고독이라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체온을 나눌 누군가를 찾아 주파수를 곤두세운다. 개인과 개인이 영원을 약속하는 순간, 제도가 탄생하는 그 모순을 뼛속깊이 겁내면서도.
언제부턴가 삶은, 아래로 쭉쭉 미끄러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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