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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to wherever whenever

서른 두살, 떠나기로 결심했다!

남편과 결혼을 준비하던 2년 전 이맘 즘 세계여행을 떠나자는 얘기를 했다.
남편은 픽업트럭을 몰고 대륙 횡단하는 로망이
나는 유랑하는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으로 세계여행을 가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례 없는 감염병 코로나19의 유행으로...일단은 접어두어야 했다.
백신이 개발 되고 확진자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팬데믹의 변주 때문에
세계여행의 꿈은 마음 저 언저리에 묻어놨다.

완벽한 일상 회복은 아직이지만 조금씩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갈 기미가 보였다.
우리는 다시 세계여행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둘다 계획에 없던 즉흥적인 여행을 좋아한다. 변산반도 고사포야영장 진짜 좋았는데!

 

고민의 기간은 길지 않았고
지금 사는 집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짐을 정리하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예전부터 남편과 세계여행에 대한 서로의 생각에 대해 꾸준히 얘기 해왔기 때문에 좀 더 금방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두 가지였다. 

1. 세계여행을 통해 뭘 얻고 싶은지?

첫째, 휴식기를 갖고 싶었다.
학교 졸업하면서 바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출퇴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어느덧 8년차 직장인이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좋은 커리어와 전문성을 목표로 이직도 하고 공부도 했는데
어느 순간 목표 지점이 없는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70살까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던데,
7년을 열심히 일했으면 1년 정도는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회사는 다니면서 연차 쓰고 여행가면 되지 않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부모님)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일을 하지 않는 상태의 소극적인 휴식보다 적극적으로 온전히 나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게 제일 크다.
질릴만큼 놀고 쉬고 하면서 30년간 숨겨왔던 베짱이 본능에 충실해볼까 한다.

둘째는 앞으로 삶의 방식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다.
이건 위에 '목표 지점이 없는 달리기'와도 관련이 있고 남편과 얘기하면서도 서로 공감대가 많았던 부분이다.
내가 여행을 다니며 제일 크게 배운 것은 세상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거기에 절대적인 좋고 나쁨이 없다는 점이었는데
코로나 2년을 지나면서 저 깨달음이 바래 없어진 것 같달까?

모두가 '정답은 이미 정해졌으니 이대로 쫓아와야 해'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무한 경쟁과 성과주의에 누구보다 익숙한 세대이면서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경주에 뛰어들어야하는 현실이 슬슬 지겹고 버거워졌다.

'뭘 위해 이렇게 달려야하는거지?' 같은 셀프 문답을 해봐도 일상은 계속 돌아가고
언제부턴가 좋은 것보다 싫은 게 많은, 회사원 456번 정도의 배역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특별한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잠깐이라도 이 흐름을 끊어놓고
내 페이스 대로 달릴 수 있는 힘을 회복하고 싶었다.

 

2. 세계여행을 선택했을 때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책임질 수 있는가?

첫번째 질문에 비해 난이도가 낮은 질문이었다.
별 일이 없다면(?)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그동안 모은 돈 대부분을 탕진하게 될 것이다.
어느 단체에도 적을 두지 않은 순수 자연인 상태가 될 것이며
각종 은행 대출과 신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불리해질 것이며
'경단남', '경단녀'가 되어 재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게 될 것이다.

사실 IT회사 기획자와 개발자로 일하는 우리 둘에게 근 2년은 호황기에 가까웠다.
이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도 예전처럼 좋은 회사에서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한들 우리는 '어떻게든 되겠지, 죽으라는 법 있겠어?' 라고 받아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근거 없는 자신감이 꽉 차있는 상태라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더 낫지

물론 기대하는 만큼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환경일 수도 있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몸이 튼튼하고 양가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할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지금 출할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세계여행을 먼저 경험한 선배 부부들의 이야기만 봐도
우리가 걱정하는 그런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세계여행으로 얻게 될 전부 일지언정
이마저도 죽을 때까지 우리의 즐거운 얘깃거리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성공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태스크 (살림 정리, 집 정리, 퇴사 등등)도 차근차근 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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